2200년 된 금화와 클레오파트라는 무슨 인연일까? (2200년 된 금화/금화/기념주화/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동전/클레오파트라/이스라엘/이집트/은화/이집트 왕/이집트 왕자/화동양행/화폐수집/화폐수집가)

화폐 세계여행/서양고전 2010/08/16 17:03 Posted by 칼리오페

지난 8월 12일 화폐수집가들의 눈을 즐겁게 한 일 기억하시나요? ^ ^

이스라엘-레바논 국경 인근 '텔 케데쉬'에서 6월 22일 발굴된 약 28g의 금화였죠? 일반 금화보다 무게가 무려 6배나 더 나간다니 놀라워요+_+ 게다가 무려 2200년 된 금화라니 그 가치가 얼마나 어마어마할지 소름이 다 돋네요....한번 만져보기라도 했으면, 아님 실제로 2200년된 금화 구경이라도 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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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금화에 대해서 도날드 아리엘 고유 물철 주화담당 국장은 금화가 이라크를 중심으로 기원전 321년에 세워진 셀루시드 왕조시대의 것으로 당시 경쟁관계에 있던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조가 주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하네요. 그는 금화에 새겨진 여인은 프톨레미 5세의 부인인 클레오파트라 1세의 형상으로 보인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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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를 연기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Cleopatra"라는  이름 듣기만 해도 참 자극적이죠? 그런데 이 이름은 사실 이집트 프톨레미 왕조에서 흔하디 흔한 이름이였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 프톨레미 왕조의 마지막 여왕인 클레오파트라 7세예요. 사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를 위해 만든 동전을 보면 메부리코에 통통한 얼굴로 미인 축에도 못끼는 얼굴인거 같아요. 그렇지만 엄청난 미인이였다니 그냥 미인이라 믿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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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2년에 제작된 안토니우스_클레오파트라 동전 : 누가누군지 잘..ㅎ>

실제로 안토니우스 아내 옥타비아는 클레오파트라보다 1000배는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이였다지만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아내조차 잊어버리지요. 진짜 그녀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봅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cm만 낮았어도 세계역사는 달라 졌을 것이다.

-파스칼-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똑똑한데다 세련된 화술과 매너, 외국어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 지적이면서 재치와 센스가 넘친 그녀. 이런 그녀이기에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여름철 아이스크림 녹이듯 녹이지 않았을까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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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사나이를 치마 폭에 휘어감고 이집트 왕국을 20년간 꿋꿋하게 지켜냈다는 표현이 옳겠지요?
정치적으로도 이집트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금화 가치를 1/3으로 격하시켜 수출 증대를 도모하고 의무공채를 발행하기도 했으며 막대한 토지와 권력을 지닌 사제 계급과 함께 토착 이집트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새로운 종교정책도 펼쳤다고 하네요. 무엇보다도 외교정책에서 중동 지방 전역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던 로마와 충졸을 피하고자 자신의 우호적인 뜻을 전해 국제 무대에서도 활약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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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갑작스럽게 일어났어요. 안토니우스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온 후 곧바로 최후를 맞았고 역사가들은 그녀가 독사에 물려 죽었다고들 하죠. 죽음조차도 그녀의 권위와 매력으로 포장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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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번 포스팅은 참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그러면서도 지적인 클레오파트라에 대해서 소개해드렸어요. 비록 허무하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죽어서도 그녀만의 매력이 끝이없는 여자인것 같습니다. 팜므파탈로만 생각한 제자신이 부끄럽습니다..ㅠ
여러분들은 이런 클레오파트라를 어떻게 생각해오셨나요?^ ^

오늘은 이집트 왕과 여왕 금화를 보여드릴께요~자세한 건 링크로 확인해보셔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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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화하면 해적선이 생각난다는,., 휴가는 다녀오셨나요,.

    2010/08/17 08:28
    • 칼리오페  수정/삭제

      아직....핑구야날자님은 다녀오셨나요?^ ^저도 급 해적선이 눈앞에 아른거리네요 ㅎㅎ

      2010/08/1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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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Panic)를 신화로 극복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의 신 '판(Pan)' 그리스 로마 신화 속 'Pan' 신이 도안으로 들어있는 주화들 (화동양행)

화폐 세계여행/서양고전 2010/03/04 12:24 Posted by 칼리오페


방금 대만 지진이 속보로 떴습니다. 리히터 규모 6.4의 강진이라고 하는데 인명피해나 자세한 소식은 아직 없군요.  

아이티에서는 사망자만 이제 20만명을 초과했고, 칠레에서도 사망자가 800명을 넘었는데 어제  키르기스스탄, 필리핀, 일본에서 잇달아 지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아직까지 인명피해는 없다고 하네요..(필리핀은 수만명의 인명피해가 우려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달 서울에서도 감지되었던 규모 3.0은 정말 댈 것도 아닙니다마는 어쩐지 무섭습니다. 아이티를 빼면 다 보면 환태평양지진대에 속해 있네요. 일주일 사이에 이렇게 전세계에 지진들이 몰려든 적이 있었던가요? (으으.. 괜찮은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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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Panic(패닉)의 어원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판(Pan)'에서 나왔습니다. 들판과 숲의 신인 '판'은 그리스어로 '모든'이라는 뜻입니다. 'Pan Americanism'(전미주의)나 'Pan Asia'(아시아 전체)라는 단어의 Pan도 '판'에서 나왔는데요, 어느 곳에서든 밤마다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툭툭 등장하는 이 '판' 때문에 숲의 동물들과 사람들이 공포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이란 의미의 'Pan'이 공포를 뜻하는 'Panic'의 어원이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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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여자 옆에 피리를 부는 사람(?)이 판입니다.
판은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양의 모습으로 굉장히 무섭게 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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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크게 보입니다.

하프를 연주하는 남자 옆에 앉아 있는 뿔달린 남자가 판입니다.



깊은 숲속에서 왠지 모르게 오소소한 느낌이 들 때, 극도로 불안한 상태가 될 때, 밤잠을 설 칠 때, '판'이 나타나서 장난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서양 사람들. 판은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모든 신과 이교의 대표로, 혐오스러운 악마로 근대까지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19세기가 되면서 그의 목가적인 모습이 강조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리스 남서부 아르카디아주 메갈로폴리스의 고대 주화입니다.
왼쪽에 있는 건 제우스의 얼굴이고, 오른쪽이 사냥용 몽둥이(lagobolon)를 잡고 있는 판입니다. 무릎엔 독수리도 있고요. 기원전 2세기 경의 주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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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wildwinds.com


Arcadia, Megalopolis. ca 182-168 BC. AR Triobol. Laureate head of Zeus left / Pan seated left, holding lagobolon; eagle on knee, monogram before, D/L behind.



이건 마케도니아의 왕 안티고누스 고나타스 시대의 고대 주화입니다. 여기선 보다 자세히 판의 얼굴이 나와 있습니다. 염소 뿔이 달린 얼굴에 사냥용 몽둥이도 보다 분명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잡고있는 방패는 마케도니아의 방패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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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wildwinds.com


Antigonus Gonatas AR Tetradrachm. Amphipolis mint. Horned, draped bust of Pan left, lagobolon over shoulder, in tondo of Macedonian shield

고대에는 '판'이 전투에서 이기게 해주는 신이어서 주화 도안에 넣었겠지요. 2004년 그리스 올림픽 기념주화 중 '판'이 들어있는 기념주화는 무척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무서운 공포도 신화로 만들어서 불안감을 피하려 했던 고대인들의 지혜를 지금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방법은 과학인 걸까요? ^^

그래도 지진은 무서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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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대인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Panic'의 어원에 대해 공부 잘 했어요

    2010/03/05 00:23
    • 칼리오페  수정/삭제

      ^^ 저도 이 포스트 올리면서 공부했답니다.

      2010/03/06 12:31
  2. 우와우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집니다! 정말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2010/04/12 08:03
    • 칼리오페  수정/삭제

      우와우님~ 감사해요~~ ^^

      2010/04/1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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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비 증강? 스파르타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아테네가 한 일 : 아테네 은화 '테트라드라크마'

화폐 세계여행/서양고전 2010/01/28 19:29 Posted by 칼리오페


어제 인터넷을 하고 있던 도중에 이런 뉴스가 뜨더군요. ‘북한, 서해NLL에 해안포 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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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서해교전이 일어나는 것인가 싶더니 교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에 가까운 북쪽 해상 2곳에 해안포를 ‘훈련용으로’ 수십발을 쏘자 백령도 주둔 해병대가 날아오는 포탄을 향해 대공 경고 사격을 했다는 것이었어요. 북쪽에서는 이런 훈련은 연례적으로 계속되었다고 주장했다는데 이렇게 NLL 근처에다가 쏜 것은 처음이었다지요. 아무튼.. 백령도에 계시는 우리 해군장병들 초긴장상태셨을 텐데.. 휴... (나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화이링~~~!!! *^^*)

아무튼.. 이번 일로 국방비 증강에 강력한 근거가 되겠네요.. 그런데 국방비 증강을 위해 국가가 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요? 세금 걷는 것보다 빠른 방법이요.. 바로 돈을 찍어내는 거죠.. ^^ 옛날 옛적, 고대 그리스에서도 그랬습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경쟁관계였던 것은 정치체제가 달라서였습니다. 남과 북이 표면상으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갈라져서 있는 것처럼요. 아테네는 민주정을 유지한 반면 스파르타는 과두정을 유지했습니다. 또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맺어서 경쟁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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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


둘이 항상 갈라져 있던 것만은 아닙니다. BC 492년부터 BC 448년까지 지속된 페르시아 전쟁에서는 같이 협력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 전쟁 이후 다시 경쟁상태로 돌아갔지요. 그런데 아테네스가 이 전쟁을 통해 그리스 전체의 새로운 맹주로 떠오르게 되자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 간에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BC 440년에 그리스의 두 대표 도시였던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각자의 동맹국들과 연합한 전쟁을 가시화하였고 BC 431년 전쟁이 시작되었죠. 펠로폰네소스 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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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진 가장 큰 이유가 역병이 돌아서라는 군요.. 마치 지금의 사스 같은 거요

Nicolas Poussin, Plague at Ashdod
c.1630, Oil on canvas,
148X198㎝, Louvre

 

BC 404년까지 이어진 이 전쟁에서는 스파르타가 승리해 아주 잠깐 그리스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스파르타의 통치가 너무 강압적이어서 각 도시국가(폴리스)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고 코린토스, 테베, 아테네, 아르고스 등의 도시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아 스파르타를 공격해 큰 타격을 입힌 코린토스 전쟁을 일으켰고, 그 이후에도 테베가 전쟁을 일으켜 결국 스파르타를 몰락하게 이끌었지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부터 고대 그리스 쇠망의 싹이 튼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 전인 기원전 440년에 만들어진 아테네의 주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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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되자 아테네는 동맹국들로부터 대량의 은을 거두어들였습니다. 국방비를 증강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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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520년경부터 아테네는 일명 ‘올빼미 은화’라고 불리는 테트라드라크마를 발행하였는데, 주화의 앞면에는 ‘아테나 여신’의 두상이, 뒷면에는 아테나 여신의 상징새인 ‘올빼미’가 올리브 가지와 아테네를 뜻하는 문자의 첫 세 글자인 'AΘE‘와 함께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BC 490년경에는 아테네가 고대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승리한 것을 기리기 위해 주화의 뒷면에 초승달 모양을 추가로 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테네의 예술은 점점 고전주의 양식을 따라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테네 테트라드라크마는 고전주의 양식보다 오래된 고대 아르카이크 양식으로 발행하였습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지속되자 테트라드라크마의 디자인의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것입니다. 아테나 여신의 고귀함은 사라지고 올빼미는 점점 기울어진 타원형처럼 변했으며 머리주위의 깃털도 더욱 거칠게 묘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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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

BC 406년에 이르자 아테네의 은이 거의 바닥이 나고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긴급조치로 동으로 만든 테트라드라크마를 발행하게 됩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테트라드라크마 동화를 소위 ‘필요에 의한 돈’이라고 부르며 테트라드라크마 은화를 발행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BC 403년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졌지만 BC 393년경 경제가 회복되자 다시 테트라드라크마 은화를 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로 발행된 아테네 테트라드라크마 은화는 더 이상 아르카이크 양식을 따르지 않았고 아테나 여신의 눈도 아몬드형이 아닌 평면적으로 변했습니다.



BC 431년 이후 대량으로 발행한 테트라드라크마는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들에서 수세기 동안 통용되었고, 아테네의 테트라드라크마를 모방한 주화들도 생겨났습니다.



방대한 양의 주화가 나온 덕분에 현재까지도 대략 100,000개 이상의 주화가 남아있는데 분명 아테네 테크라드라크마는 당시에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 인기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ps. 아래 있는 주화는 데카드라크마입니다. 데카는 10, 즉 10드라크마인거죠. 테트라드라크마는 4드라크마입니다. 보통은 테트라드라크마를 많이 썼고, 데카드라크마는 실질적인 최고단위 주화였습니다. 1990년 소더비 경매에서 $500,000 달러 (약 6억원)로 예상가가 매겨졌던 은화입니다. BC465년에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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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8 19:29 2010/01/2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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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타원형 화폐는 처음 봐요,,,

    2010/02/22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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