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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8/26 마더 테레사, 당신의 선한 모습이 그립습니다. 탄생 100주년 기념일! [테레사/마더 테레사/마더테레사/테레사수녀/테레사 수녀/마더 테레사 수녀/테레사 효과/테레사효과/마더테레사 효과/마더 테레사 효과/청렴인물/화동양행/기념주화/금화/은화] by 칼리오페 (4)
  3. 2010/08/13 김대중자서전-민주주의 상징 김대중 그의 삶을 되돌아 본다 [금화/기념주화/김대중/김대중 기념주화/김대중 노벨상/김대중 서거/김대중 서거1주년/김대중 어록/김대중 자서전/김대중 추모/김대중 추모문화제/김대중 출판기념회/김대중의 글씨/김대중자서전/노무현/은화/이희호/화동양행/화폐수집/김대중서거1주년/김대중 생애/김대중 업적/김대중생애/김대중업적] by 칼리오페 (6)
  4. 2010/08/05 참으로 아름답던, 그리고 참으로 순수했던, '마릴린 먼로'를 추억하며 [마릴린 먼로, 마릴린먼로, 마릴린 먼로 남편, 조 디마지오, 아서 밀러, 마릴린 먼로 죽음, 마릴린 먼로 자살, 예술메달, 화폐수집, 화동양행] by 칼리오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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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황금연휴, 가족&연인 모두가 만족하는 교과서 속 경주 여행 (경주여행/추석/추석연휴/추석여행/경주펜션/화동양행/화폐수집/석굴암/1박2일/1박2일여행지)

화폐 국내여행/기념주화 2010/08/31 11:53 Posted by 칼리오페


이제 추석이 20여일 앞으로 다가 왔네요^ ^이번에는 추석이 황금연휴라고 하죠? 추석연휴 3일을 포함해서 길게는 9일정도의 추석 황금연휴가 시작되는데요~ 이 추석 황금연휴 동안 무얼 계획하고 계신지요? (당연히 추석은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그 외 기간동안 입니다^ ^) 해외여행을 가시는 분도 계실테고 그냥 집에서 쉬신다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오랜만에 긴 추석 동안 1박2일로 바깥 나들이 어떠세요? 그래서 오늘은 가까운 경주여행 길 소개해 드릴까해요. 경주여행하면 뭐가 생각나시는가요? 수학여행? 불국사? TV에서도 요즘 경주여행 길 소개가 많던데 그럼 경주여행 함께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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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대웅전 출처: flickr>



경주로 출발!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함께 숨쉬는 경주. 모두들 잘 도착하셨나요?(가정입니다....후훗) 그럼 함께 코스를 정해야 하는데요~ 테마를 가족과 함께 떠나는 교과서 속 코스인 만큼 [불국사-석굴암-보문단지-첨성대-석빙고-안압지]코스로 돌겠습니다^ ^ 낙오없이 따라오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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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지도: 클릭하시면 엄청 커져요^ ^ 출처: 경주시청>




1번째 목적지 - 수학여행의 일번지 불국사

올해 들어서 경주 불국사가 매스컴을 많이 탄거 같아요. 1박2일에서도 무한도전에서도. 그죠?^ ^불국사 하면 저는 백운교와 청운교가 보이는 곳만 생각했어요. 거기서 기념사진 제일 많이 찍잖아요~ 게다가 가을이 되면 단풍이 알록달록 예쁘게 들어 운치를 더한다니 꼭 가보셔야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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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출처: flickr>

그리고 불국사 극락전의 황금돼지 +_+ 사진의 황금돼지 말고도 처마 밑의 황금돼지를 구경하러 많이 오시죠? 왜 처마밑에 황금돼지를 숨겼을까에 대한 대표적인 설화가 있는데요.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이 토함산에서 자주 사냥을 다녔고 어느 곰을 사냥한 그 날 꿈에 그 곰이 나타나 '나는 너를 해치지 않았는데 너는 왜 나를 죽였느냐'고 엄하게 말을 했다 하네요. 그 후 김대성은 살생을 삼가고 불가에 입문하며 이를 맹세하기 위해 처마 밑에 몰래 돼지형상을 넣었다고 해요. 재밌죠?^ ^역사도 알고 보면 재밌는게 많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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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전 황금돼지 : 이를 만지면 복이 온다고... 출처: flickr>


2번째 목적지 - 국보 제24호 석굴암

석굴암을 가다보면 감로수라고 유명한 물이 있어요. 이 물은 그냥 일반물과 달리 약간 탄산이 섞인 듯한 그런 말이예요~ 지친 몸에 마시면 에너지가 팍팍 솟는 느낌?! 그 물을 한잔 딱 마시고 올라가서 석굴암 보존불을 보면 괜시리 전율이 느껴진답니다. 여기서 힘 받으신 분들은 토함산도 한번 올라가셔도 좋을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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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으로 그 웅장함이 더 더해진 석굴암 출처: flickr>


3번째 목적지 - 연인들도 참많은 보문단지

보문단지에서는 식사할 곳도 참 많고, 바이크나 자전거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참 많아요. 2인용 자전거도 있으니 함께 타는 재미도 느껴보시고, 경주월드도 있으니 놀이기구도 즐겨보세요. 경주월드 자유이용권은 할인되는 카드 챙겨가셔서 꼭 할인 받아서 구입하시구요~펜션에 묵으실 경우에는 펜션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으니 문의해보시면 될거예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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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산나물비빔밥 출처: flickr>


4번째 목적지 - 꼭 붙어 있는 첨성대와 석빙고

첨성대와 석빙고도 교과서에서, 다큐에서 많이 보셨죠?^ ^다들 안보고도 그려라고 하면 잘 그리실 정도일 꺼예요. 그래도 경주에 왔으니 한번 둘러 보는 것도 좋겠죠? 첨성대는 국보 제31호로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선덕여왕때 건립되었답니다^ ^선덕여왕 잘 보셨던 분들은 이미 웃고 계시죠?ㅎㅎ첨성대 근처에 가며 미실판넬이 있다니 기념촬영하심 좋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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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업정 첨성대 출처:flickr>


그리고 석빙고는 보물 제66호로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석조 창고로 겨울에 얼음을 채취해 저장했다가 여름에 사용했다고 해요. 선조들의 비상한 두뇌가 놀랍습니다.. 이 앞에 서면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느낌이 드니 모두들 한번 서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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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빙고 출처:flickr>


5번째 목적지 - 야경이 절정인 안압지


안압지 밤에 가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도 항상 낮에만 안압지를 가보았는데 올해 밤에 한번 가봤어요. 와 그런데 야경이 장난아니예요. 그래서 작가분들도 많이 오셔서 삼각대 올려놓고 사진 많이 찍으시더라구요. 안압지는 신라때 연못이예요. 호화스러움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아름다운 장소가 참 많답니다. 사진찍을 준비 하셔서 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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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 야경 출처:flickr>


TIP1. 스탬프 투어

1박2일에서도 보셨듯이 스탬프 투어를 하면서 여행다니시면 더 재밌을 거예요. 찍는 보람도 있고 간직할 수 있는 뿌듯함도 있거든요^ ^ 유적지 근처 안내소에 가면 받으실 수 있답니다. 아 그리고 직원분이 근무하시는 시간에만 받을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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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탬프 투어 출처: 경주시청>


TIP2. 자전거 빌리기

자전거를 빌리실 때는 바구니를 함께 빌리시는게 10000배는 편하실 거예요^ ^역에서도 바로 빌릴 수 있으니 자전거 여행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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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타기 출처: flickr>


TIP3. 경주황남빵

경주 황남빵 아시죠? 서울에서도 대구에서도 부산에서도 팔긴 하지만 그래도 경주에 왔으니 한번 사서 드심이 어떠실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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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빵을 만드는 손길 출처: flickr>




오늘 경주 여행 잘 따라오셨나요? 사전 답사 잘 하셨으니 추석연휴에는 가족들과 함께 이 코스로 돌아보시면 어떨까요. 연인이나 친구와도 괜찮겠죠?^ ^ 추석 연휴 알차게 준비하시구요. 또 좋은 코스 있으면 포스팅으로 실천하겠습니다ㅎ 경주를 주제로 자료를 뽑다보니 주화도 왕건이로 하나 건졌어요^------------^

석굴암 기념주화입니다. 보신적 있으신지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국보 제24호 석굴암. 주화에서도 그 웅장함이 느껴지시는지요?^ ^이 석굴암은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보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다네요. 그런데 지금은 38구만 남았답니다. 더 자세한 정보는 링크☞를 통해 확인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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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여름에 한번 가보다 하면서 또 못갔네요,,ㅠㅠ

    2010/08/31 12:30
    • 칼리오페  수정/삭제

      그럼 이번 황금연휴인 추석은 어떠신지요?^ ^

      2010/08/31 13:17
  2. 온누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보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2010/09/01 01:21
    • 칼리오페  수정/삭제

      네 온누리님 글도 잘읽고 있어요^ ^ 감사합니다.

      2010/09/01 10:13
  3. 슈타인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주..한 추억하는곳인데

    이곳서 보고가네요

    옛 추억이 새록 새록 떠오르게해주셔서..감사합니다..

    2010/09/01 20:17
    • 칼리오페  수정/삭제

      별말씀을요^ ^좋은 추억 떠올리고 가신다니 기분 좋습니다^ ^

      좋은 포스팅 많이 올릴테니
      자주 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2010/09/01 22:49
  4. 파아란기쁨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 경주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네요...
    아이들이 좀더 크면 역사 공부겸 한번 다녀와야겟네요...^^

    2010/09/02 18:11
    • 칼리오페  수정/삭제

      말그대로 경주는 역사 책 속으로 떠나는 거 같아요~
      애들 크면 꼭 한번 다녀오세요^ ^

      파아란기쁨님 반갑습니다+_+

      2010/09/0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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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 당신의 선한 모습이 그립습니다. 탄생 100주년 기념일! [테레사/마더 테레사/마더테레사/테레사수녀/테레사 수녀/마더 테레사 수녀/테레사 효과/테레사효과/마더테레사 효과/마더 테레사 효과/청렴인물/화동양행/기념주화/금화/은화]

화폐 국내여행/기념주화 2010/08/26 09:02 Posted by 칼리오페


오늘은 마더 테레사 수녀가 태어난지 100주년 날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원래 알바니아 사람이었다고 해요. 본명이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Anjezë Gonxhe Bojaxhiu)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군요.^^ 1928년 수녀가 되면서 '테레사'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에 동화책에서 본 것 같은데, 테레사 수녀는 원래는 꽤 사는 집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러 가는 길이었다고 해요. 그렇게 인도 다르질링으로 가는 기차에서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신(神)의 음성을 듣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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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라사 수녀.  사진 출처는 위키백과



그래서 테레사 수녀는 캘커타로 향합니다. 거기서 무려 45년 동안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빈민과 병자, 고아,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세계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자로 널리 알려집니다.

이런 테레사 수녀의 헌신에 대해 전 세계가 감동을 받습니다. 그 결과 1979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1980년에는 인도의 가장 높은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Bharat Ratna)를 수여받죠. 1983년 영국 명예 메리트 훈장(honorary Member of the Order of Merit)을 받기도 합니다.

1997년 테레사 수녀가 사망하자 인도에서는 국장으로 그녀의 장례를 치룹니다.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캘커타의 복녀 테라사'라는 호칭을 줍니다. 현재 성자로 인정받는 시성절차가 진행중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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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사당동 판자촌을 방문했던 테레사 수녀




테레사 효과

1998년 미국 하버드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바로 테레사 수녀처럼 남을 위한 봉사활돌을 하거나, 그런 일을 보기만 해도 인체의 면역기능이 크게 향상된다는 것이죠. 의학적으로는 원래 '고양(高揚)효과'라고 부른다고 하는데요. 그보다는 '테레사 효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정말 테레사 수녀의 영향력은 대단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어요.


테레사 수녀를 향한 비평

생전에 늘 가난한 사람들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테레사 수녀는 일부 진보적인 사람들에게서 '부자들의 성녀'라는 비평을 받습니다. 선뜻 이해가 안되는데요. 이유는 테레사 수녀는 가난을 하늘의 뜻이라고 미화하여, 결과적으로는 캘커타 민중들이 궁극적으로 그 가난을 벗어나려는 투쟁을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공과는 객관적인 판단을 받아야 하겠지요. 같은 맥락에서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살았던 테레사 수녀의 삶과 선택에 대해서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



테레사 수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금화와 은화가 프랑스에서 나왔습니다. 기념화에는 “우리 집에는 또 한 명의 아이를 위한 침대가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는 테레사 수녀의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 앞에 '마더'라는 호칭을 붙였는지 알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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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마더 데레사 탄생 100주년’ 금화은화



"저는 우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청빈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배고프고 벌거벗고 집이 없으며
신체에 장애가 있고 눈이 멀고 병에 걸려서,

사회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며 사랑 받지 못하며
사회에 짐이 되고 모든 이들이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기쁘게 받습니다."

마더 테라사,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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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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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인들을 기리는 주화는 소유하는 것 만해도 남다를것 같아요

    2010/08/26 12:56
    • 칼리오페  수정/삭제

      그분들을 다시 생각해달라고 만들어진 주화일수록 빛이 나더라구요^ ^

      2010/08/26 13:41
  2. 아디오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녀님과 추기경의 모습이 담겨 보는이들에게 평안을 줄거 같습니다.. ^^

    2010/08/29 04:41
    • 칼리오페  수정/삭제

      네 이분들의 존재감 하나만으로도 한없이 평안해질 수 있다는게 감사하죠~^ ^

      2010/08/3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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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자서전-민주주의 상징 김대중 그의 삶을 되돌아 본다 [금화/기념주화/김대중/김대중 기념주화/김대중 노벨상/김대중 서거/김대중 서거1주년/김대중 어록/김대중 자서전/김대중 추모/김대중 추모문화제/김대중 출판기념회/김대중의 글씨/김대중자서전/노무현/은화/이희호/화동양행/화폐수집/김대중서거1주년/김대중 생애/김대중 업적/김대중생애/김대중업적]

화폐 국내여행 2010/08/13 11:57 Posted by 칼리오페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정말 깜짝 놀랐는데요. 그게 벌써 1주년이 되었네요. ㅠㅠ 1년동안 천안함 사건,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까지 참 많은 일이 일어나서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고 생각이 드나봐요~

그래도 시민들은 김대중대통령을 잊지 않고, 서거 1주년을 기념하는 김대중자서전 출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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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자서전 - 민주주의 상징 김대중 그의 삶을 되돌아 본다 ☞


10일에는 서거 1주년을 맞이하여 자서전 출판기념회를가졌다고 하는데요. 자서전 재고는 벌써 부족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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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도 오늘은 대세를 따르며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얘기해볼까합니다. ^^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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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김대중 대통령, 미남이시네요ㅋㅋㅋ 출처는 연합뉴스




 대통령 김대중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은 건국 50년 만의 첫 여야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1998년 2월 25일,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국정지표로 삼았지요.

그는 대통령 선거운동과정에서 공언한 '준비된 대통령'답게 과감한 경제개혁에 착수해 지난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려 노력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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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 포용정책을 꾸준히 견지함으로써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00년 6월 13~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해 분단 사상 55년 만에 첫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 한국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서 당당히 국위를 선양하셨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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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관되게 추진한 햇볕정책은 남북관계에 극적인 진전을 가져와 금강산 관광이 가능하도록 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밖에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설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 국민기초생활법 제정, 여성부 신설, 정보통신(IT)산업 기반정착 등 인권과 복지분야에서 개선을 이룩해냈습니다.



 그의 어록  

김대중 대통령은 달변가이자, 즉석연설의 대가였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수많은 어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가 어떤 어록을 남겼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

“최고의 대화는 경청이다.” (“옥중서신” 중에서)

“민족주의는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대외적으로는 독립과 공존을 양립시킬 수 있고, 대내적으로는 통합과 다양성을 병행시킬 수 있다. 민주주의 없는 민족주의는 쇼비니즘과 국민억압의 도구가 되기 쉽다.” (“옥중서신” 중에서)

“인생은 도전과 응전이다. 어떠한 어려운 도전에도 반드시 응전의 길이 있으며, 어떠한 불행의 배후에도 반드시 행운으로 돌릴 일면이 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실천한 사람은 반드시 인생의 성공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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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는 마음들

서거1주년을 맞아 김대중 대통령 어록 서예전을 서울인사동한국미술관에서 11일부터 18일까지 연다고 하네요~ 시간되시는 분들은 다녀와도 좋을 거 같아요.
또 전북전주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붓글씨 작품도 전시한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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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운명을 달리한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생각하고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곳저곳에서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yes24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들을 모아 코너를 꾸며
추모글을 남기는 공간을 두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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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희망 그리고 김대중'이라는 추모문화제도 8월 17일 열린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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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는데요.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 은메달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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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고, 남북관계는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룩한 업적들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더더욱 김대중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ㅠㅠ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하늘에서라도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응원해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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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거 1주년이 되었군요..

    2010/08/13 13:48
    • 칼리오페  수정/삭제

      네 벌써 1주년이 지났네요. 세월 참 빠르죠? 잊혀진다는건 참 쉽지만 이렇게 기억된다는 것만으로도 김대중 대통령은 행복한 사람 같아요^ ^

      2010/08/13 18:31
  2. 탐진강  수정/삭제  댓글쓰기

    벌써 서거 1주기가 되었군요.
    행동하는 양심은 점차 줄고 참 안타깝습니다

    2010/08/14 12:15
    • 칼리오페  수정/삭제

      그러게요. 또다른 좋은 정치인을 기대해봐야요^ ^탐진강님 반갑습니다

      2010/08/14 12:26
  3. 치즈루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년과 올해. 유난히도 큰 별이 하나 둘 스러져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맘 뿐이네요.

    2010/08/17 15:28
    • 칼리오페  수정/삭제

      그러게요.. 참 안타까워요.. 그분들을 위해 남은 저희라도 열심히 살아야죠!

      2010/08/1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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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름답던, 그리고 참으로 순수했던, '마릴린 먼로'를 추억하며 [마릴린 먼로, 마릴린먼로, 마릴린 먼로 남편, 조 디마지오, 아서 밀러, 마릴린 먼로 죽음, 마릴린 먼로 자살, 예술메달, 화폐수집, 화동양행]

화폐 국내여행/별전 메달 기타 2010/08/05 09:12 Posted by 칼리오페


마릴린 먼로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매력적인 여배우? 백치미? 혹은 저급한? 마릴린 먼로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지요. 도대체 마릴린 먼로의 어떤 삶을 살았기에 그럴까요? 한번 살펴보지요.ㅋㅋㅋ 그런데 왜 갑자기 마릴린 먼로 이야기냐고요? ^^  이유가 있습니다. 마지막에 말씀드리지요. ^^ (그치만 마릴린 먼로의 팬들은 아실 수도 있겠군요~)  



어린시절

마릴린 먼로의 본명은 노마 진 모턴슨 Norma Jeane Mortenson 이라고 합니다. 알려진대로 그녀의 어린시절은 불행했습니다. 아버지는 가정을 버렸고,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지요. 결국 양부모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지만,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고, 이후 보육원과 고아원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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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마릴린 먼로,
밝은 모습에 비해 그녀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죠.



1942년, 노마 진은 16세의 나이로 또 다른 양부모의 주선에 의해 짐 도허티와 결혼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바로 해병대에 입대했고, 혼자 남은 노마 진은 군수공장에서 낙하산에 분무기로 위장도색 페인트칠을 하던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진작가 데이비드 코너버를 만나 모델과 영화배우의 길에 들어섭니다. 아내가 하는 일을 못마땅히 여겼던 도허티는 노마 진과 이혼하죠. 첫번째 결혼생활에 실패한 것입니다. 노마 진은 헐리우드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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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의 첫번째 남편인 짐 도허티




연예생활과 결혼생활의 명암 

1946년 8월 26일, 노마 진은 이름을 마릴린 먼로로 바꾸고, 20세기폭스사와 첫 계약을 맺었다. 주로 모델로 활동했지만, 그것은 여배우로 성장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었다. 1947년 마릴린 먼로는 첫 번째 영화 <스쿠다 후! 스쿠다 헤이!>(1947), <위험한 세월 Dangerous Years>(1947), <코러스의 숙녀들 Ladies of the Chorus>(1949), <러브 해피 Love Happy>, <아스팔트 정글 The Asphalt Jungle>(1950),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Gentlemen Prefer Blondes>(1953),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How to Marry a Millionaire>(1953) 등에 출연합니다. 특히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를 통해 마릴린 먼로가 ‘섹스 심벌’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게 됩니다.


1954년 마릴린 먼로는 유명한 야구선수였던 조 디마지오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당대 최고의 배우와 스포츠 스타의 만남은 큰 화제를 낳았죠. 그러나 9개월만에 파경을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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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의 두번째 남편이었던 조 디마지오



그러나 순탄치 않았던 이 기간, 마릴린 먼로는 세계인에게 익숙한, 자신의 이미지를 남기게 됩니다. 바로 <7년 만의 외출 The Seven Year Itch>(1955)에서,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드레스가 들리는 관능적이면서도 코믹한 장면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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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 하면 떠오르는 명장면이지요



매력적인 외모뿐만 아니라 연기력도 인정받고 싶어했던 먼로는 뉴욕의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리 스트래스버그로부터 연기수업을 받습니다. 탁월한 연기력까지 갖춘 그녀는 할리우드로 돌아와 <버스 정류장 Bus Stop>(1956), 로렌스 올리비에와 공연한 <왕자와 쇼걸 The Prince and the Showgirl>(1957),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1959), <부적합자 The Misfits>(1961) 등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1956년 유명 극작가인 아서 밀러와 세번째 결혼을 하지만, 1961년에 이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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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의 세번째 남편이었던 아서 밀러



이후 마릴린 먼로는 유명한 과학자 아인슈타인, 가수 프랭크 시네트라와 이브 몽탕, 그리고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 형제와 스캔들을 뿌립니다. 또 FBI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멕시코 여행 당시의 행동들이 FBI 국장에게 보고될 만큼 정치적으로 자유롭지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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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의 남자들(?)


 

죽음

1962년 8월 5일, 마릴린 먼로는 침대에서 알몸인 체로 누워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향년 37세. 비록 한 차례 이혼했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있었던 조 디마지오와의 재결합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죠. 사인은 수면제 과다로 발표되었지만, 그녀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혹자들은 마릴린 먼로가 늘 애정결핍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사랑했던 사람과 재혼을 앞둔 시점에 굳기 자살을 선택했을까 의문이 듭니다.

아직도 사람들에 의해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것은 존.F. 케네디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입니다. 그는 마릴린 먼로와의 관계가 깊어지자 불안해졌고, 결국 자신과 연계되어 있던 마피아에게 살해를 청부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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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6주 전, 마릴린 먼로의 마지막 사진




여전히 그녀를 추억하는 사람들

영화와 같았던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녀를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사후에 그녀의 묏자리(유골함)의 윗자리가 70대 여성에 의해 경매 매물로 놓였는데 약 450만 달러(한화 약 56억 2000만원)로 내놓아졌다고 합니다. 마릴린 먼로의 육체미가 돋보인 X-ray 사진 역시 1200달러(약 133만원) 내외로 거래되었죠. 약간 이상하기도 한 이야기지만, 그만큼 사람들은 마릴린 먼로를 추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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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갑자기 마릴린 먼로 이야기나고요? ^^ 오늘이 마릴린 먼로가,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던 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프랑스에서 나온 마릴린 먼로의 예술메달도 다양한 추억으로 그녀를 마음 깊이 간직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수 있겠네요. ^^ 



사람들은 나를 사람이 아니라 무슨 거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봐요.
그들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음란한 생각을 보는 것이죠.
그들은 나를 음란하다고 몰아붙이면서 자신들은 결백한 척하지만
그들은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알려하지 않죠.
그대신 나라는 사람을 마음대로 지어냅니다.
나는 그들과 시비를 가릴 생각은 없어요.
그들은 내가 아닌 그 누군가를 무척 좋아하는듯 하니까...
지금껏 살면서 내가 바란 것이라곤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대하고,
그들은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야 공평한 거래지요.
그리고 나는 여자예요. 한 남자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요.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나는 정말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어요.

마릴린 먼로(1926.6.1~196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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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ish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 디마지오가 정말 불쌍하죠.....먼로와 헤어지고 독신으로 살았다는....ㅠㅠ

    2010/08/05 09:19
    • 칼리 오페  수정/삭제

      매주 마릴린 먼로의 무덤에 꽃을 갖다 놓았다죠?

      숨을 거두면서도 "이제 마릴린 먼로를 만나겠군"이라고

      말했던 멋진 사람이었죠 ^^

      2010/08/05 17:22
  2. 세미예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릴린 먼로를 추억해 봅니다.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0/08/05 09:42
    • 칼리 오페  수정/삭제

      네, 고맙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0/08/05 17:23
  3.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한 여자인것 같아요,.. 끝임없이 그를 흠모하고 기리는 분들이 많으니..

    2010/08/05 12:21
    • 칼리 오페  수정/삭제

      그러게 말이예요.
      참 아름답고, 참 순수했던 사람 같아요 ^^

      2010/08/0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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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1만원권 도안의 원래 주인공은 실은 세종대왕이 아니였다! 불교유적기념주화 시리즈 (화동양행) 석굴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만원, 1만원, 일만원, 만원권, 1만원권, 일만원권, 부탄, 불교유산, 불교, 금화, 은화, 기념주화, 기념 주화

화폐 국내여행/지폐 2010/05/27 09:59 Posted by 칼리오페



1만원권은 1973년 처음으로 발행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1만원권의 원래 주인공은 지금의 세종대왕이 아니였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ㅋㅋㅋ)


내가 원래 만원권 주인공이었다!

1972년, 한국은행은 최고액권으로 1만원권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앞면에는 석굴암 본존불을, 뒷면에는 불국사 전경을 넣기로 결정합니다.

이 도안은 시쇄품이 제작돼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서명을 받아 발행공고까지 마쳤습니다. 발행공고를 마쳤다는 것은 정식 은행권으로서 유통채비가 모두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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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쇄품으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서명이 선명하다. 출처는 세계문화유산 석굴암 홈페이지 바로가기>



그러나 발행공고가 나가자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계가 거세게 반발했다고 합니다. 특정종교를 두둔하는 것으로 비쳐져 여론도 부정적이었고요. 이는 아마도 당시 영부인이었던 육영수 여사가 불교도였다는 점 때문에 더욱 일이 커진듯 합니다.

어쨌든 그래서 석굴암이 그려진 1만원권은 물건너 가버렸고, 한국은행은 이듬해 지금의 세종대왕이 도안된 새 1만원권을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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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내가 주인공이다 ㅋㅋㅋ 석굴암이 1만원권에 들어갔으면 이런 장난은 못했겠네요.>



얼마전 퇴임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은행에서만 무려 42년을 근무했다고 하는데요. 가장 잊지 못하는 사건으로 '석굴암 만원권 사건'을 꼽았다고 하네요. 아마 그때 고생을 많이 하셨나봐요. ^^;;

석굴암이 그려진 만원권은 시쇄품으로 나왔던 것 딱 두 장 밖에 없다고 하네요. 하나는 서울 한국은행 본관에 있는 화폐박물관에, 또 하나는 대구 화폐박물관에 각각 영구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으~ 화폐 수집가 여러분들은 굉장히 아쉬우시겠어요. ^^;;


불교의 나라에서 온 선물

부탄... 갑가지 왜 부탄 얘기냐고요? ㅋㅋㅋ

부탄은 현재 입헌군주국이지만, 전통과 종교에 있어서는 불교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주제가 성립된 1907년 전까지는 푸나카 사원의 대승정 다르마 라자의 지배를 받았고, 행정 실무는 데프 라자(副王)가 행하는 승속(僧俗)의 이중 통치 형태를 갖고 있던 불교 국가입니다. 지금도 대승불교를 국교로 지정한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고요.

이 부탄에서 세계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를 기념하기 위해 8차에 걸쳐 금화와 은화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 두 번째 주인공으로 우리의 석굴암이 선정되었습니다. 앞면은 석굴암 본존불이며 뒷면에는 불교의 8가지 길상 중의 하나인 소라고둥(dungkar) 문양을 새겼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부탄 석굴암 금화 불교유적 기념 주화>        <부탄 석굴암 색채 은화불교유적 기념 주화>
                                       바로가기                                                      바로가기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적인 가치와 독특한 건축미를 인정받아, 불국사와 함께 1995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된 석굴암.

비록 석굴암이 그려진 우리나라 1만원권은 가질 수 없지만, 저 멀리 불교국가 부탄에서 발행한 금화와 은화를 수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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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7 09:59 2010/05/2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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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 가지고 장난치면 통화법에 걸리지 않나요.. 훼손할때만 그렇죠..

    2010/05/27 13:10
    • 칼리오페  수정/삭제

      앗! 너무 재밌어서 그만...;; ^^

      2010/05/28 13:48
  2. 치즈루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원짜리 보고 빵~!터졌어요 ㅋㅋ
    그나저나 처음 1만원권의 주인공이 본래부터 세종대왕이 아니었다니~!
    칼리오페님 덕분에 지식이 늘어나네요ㅋ

    2010/05/27 14:34
    • 칼리오페  수정/삭제

      앗 감사합니다 ㅋㅋㅋ

      치즈루님 블로그에서도 좋은 지식을 많이 얻고 있어요!

      2010/05/2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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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의 소꿉친구 남동순 할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 (향년 107세) 한국조폐공사 유관순 기념메달 (화동양행)

화폐 국내여행/별전 메달 기타 2010/04/07 13:51 Posted by 칼리오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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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에서 유관순 열사의 친구인 남동순씨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직 젊은(?) 저는 유관순의 친구가 아직도 살아있었다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향년 107세로 지난 3일 자택에서 별세한 남동순 할머니가 뉴스로 나온다는 것은 분명 그 분의 삶이 녹록치 않을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고요.

유관순 열사는 충남 천안 출신입니다. 3.1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킨 장본인인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을 다니다가 천안으로 내려가 3.1 운동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남동순 할머니는 1903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는데요, 6살 때부터 유관순 열사의 소꿉친구였습니다. 함께 자라나 이화학당에도 같이 진학했고, 함께 서대문 형무소에도 갇혔고요, 3.1운동 직후 신익희 선생이 결성한 독립운동 잔체 '7인의 결사대'의 홍일점으로 중국, 연해주 몽골을 누볐던 독립군으로 활동했고 광복 뒤에는 여러 사회활동과 자선사업을 하며 평생 홀로 사셨습니다.

“고향이 둘 다 천안이잖어. 여섯 살 적부터 소꿉친구지. 관순이는 나보다 민첩하면서도 새암이 많았어 풀각시를 알어? 풀 뜯어 풀각시 만들 때 내가 먼저 만들면 관순이가 싫어해. 그래 비위 맞춘다고 내가 천천히 만들었지. 관순이는 또 심령이 좋고 사상이 좋았어. 은연중 일본말이 튀어나오면 ‘일본말을 잘하니 너는 친일파다’ 하면서 혼을 내. 그럼 내가 ‘동무끼린데 좀 봐주라’ 하며 호호거렸지."

선친 남승윤은 당시 4개 국어를 하는 외교관이셨습니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며 남동순 할머니을 학교에 보내 가르침을 받게 했던 그는 독립운동에도 가담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지원으로 학교를 다녔던 남 할머니는 대신 할아버지에게 여자가 조신하지 않다고 많이 혼났다고 합니다.


아래는 조선일보 2005년 8월 13일자 기사에서 퍼온 인터뷰 부분입니다.

―3·1운동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듣고 싶어요. 누구 제안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하셨어요?

“일제를 향한 분노에 누가 먼저랄 게 어디 있어. 들불처럼 번져나가니 학교에 휴교령이 내리고 학생들은 거리로 몰려간 거지. 나는 관순이하고 남산으로 올라갔다가 장충단을 거쳐 종로로 갔어. 그런데 어떤 남자가 그래. 둘이 붙어다니지 말고 하나는 고향으로 내려가 만세를 부르라고.”


―그럼 유 열사 혼자서만 천안으로 내려가신 거네요.

“천안뿐인가. 청주, 진천 등지의 학교와 교회로 다니면서 사람들을 모았지. 4월 1일 천안 아우내장터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어. 그러니 약이 오른 일본 헌병들이 관순이는 공주 감옥으로 처넣고 병천 관순이 집은 불 질러 태워버렸어. 관순이가 처음부터 열사로 대접받았던 건 아냐. 한동안 병천에서 는 유가(柳家) 놈들 때문에 우리가 못 산다고 동네 사람들 원망이 심했어. 일본놈들이 다 똑같은 종자 라며 못살게 구니까. 지금은 세계의 유관순이 되었으니 원이 없지.”


―7인 결사대엔 어떻게 들어가게 되셨어요?

“3·1운동 이후에 신익희 선생이 ‘7인 결사대’란 걸 조직했는데 여성 대원이 필요하다는 거야. 우리나라 다 빼앗고 죽이는 일본 놈들에게 항거하는 사업이라고 해서 두말없이 따라갔지. 가보니 다 남자들이야. 상관 안 했어. 나라 구하는 데 남녀가 따로 있나. 그 길로 연해주, 몽골, 중국을 안방처럼 누비기 시작했지. 자금 전달부터 독립군들 옷 꿰매는 일, 무장투쟁까지 안해본 일 없어.”


―안 무서우셨어요? 총은 쏘셨고요?

“무서운 게 어디 있어. 총이 없어 칼을 썼지. 일본놈들 주재소, 경찰서 습격해 그냥 때려부수고. 배고픈 건 말도 못해. 가랑잎은 사발이고 싸릿가지는 젓가락인데, 먹을 게 있어야지. 운 좋으면 배추를 뜯어 소금에 고춧가루 넣어 죽을 끓여. 모자라면 대장이랑 나는 굶었어. 대신 솔 이파리를 씹어먹거나 불린 날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었지.”


―죽을 고비도 많으셨겠어요.

“내가 보기보다 영리해. 한번은 독립자금을 전달하려고 나 혼자 압록강을 건너야 했지. 신발 바닥을 뜯어 거기에 미농지로 싼 돈을 넣어 가는 거야. 나루터에 일본놈들이 지키고 있다가 어딜 가냐고 물어. ‘강 너머 시집간 울 언니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몇 번 농을 걸다가 보내줘. 건너자마자 돈을 건네주고 바로 강을 건너왔더니 그놈들 눈초리가 이상해. 그래서 ‘가보니 만주로 이사 가고 없더라’며 얼른 내뺐지.”


―광복 후에는 박순천, 임영신 등 이끌던 ‘독립촉성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하셨지요?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여운형 선생은 좌익의 총수가 되었는데 할머니는 왜 우익을 택하셨어요?

“계열로 보면 나도 사회주의 될 사람이지. 그런데 광복 직후 내게 은혜를 입은 한 형사가 날더러 평양으로 가면 절대 안 된다는거야. 그래야 여사님이 살 수 있다면서. 그땐 좌우 나뉘는 게 그렇게 허무했어. 목숨 걸고 되찾은 조국이 둘로 다시 쪼개졌으니 그게 평생 한이 돼.”


―그래서 전쟁고아들 돌보는 일에 헌신하기 시작하셨군요.

“서울역, 남대문 시장에 전라도 경상도에서 올라온 아이들이 버글버글했어. 못 먹고 못 입어 그렇지 눈이며 코가 똑똑하게 잘생겼는데, 내가 얘들을 초등학교라도 보내서 제대로 살게 해야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낙원동에 ‘한미고아원’을 만들었지. 한번은 미군들이 전쟁통에 총 맞은 아이들을 헬리콥터로 실어다가 남산에 수북이 데려다놓았는데 아무도 거들떠보질 않아. 그래 화가 나서 ‘한국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느냐’는 팻말을 써붙여 놓았지. 난 지금도 자기 자식만 애지중지하는 사람들 이해가 안 가.”


―그렇게 할머니 손을 거쳐간 자식들이 1000여명에 이른다면서요.

“대학은 4명밖에 못 갔지만, 대령도 나오고 선생도 나왔지. 딸들 시집 갈 때는 내가 친어머니인 줄 알고 사돈들이 ‘이리 이쁘게 잘 길러줘 고맙다’ 했어. 남편 없고 자식 없다고 사람들은 날 불쌍하게 볼는지 모르지만 난 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생각해.”


―1975년엔 여자 예비군을 창설하셨지요? 남녀평등시대에 남자들에게만 국방을 맡길 수 없다면서…

“임진왜란 때 여자들도 행주 치마에 돌을 주워 날랐잖아. 권율 장군의 행주치마 부대 말이야. 젊은 여성 150명을 모아 자비로 예비군복을 만들어 입혔지. 벽제 군부대에 가서 남자 군인들이랑 똑같이 총 쏘는 연습을 하고 탱크도 타고. 평상시에는 봉사활동을 나갔어. 몇 년 못 갔지만 정말 멋지게 했어.”


―1970년대 새마을 운동에도 아주 열심이셨지요?

“술 따르고 장구 두드리는 일만 빼놓고 내가 안해본 일이 있나.(웃음) 새마을운동을 두고 요즘 사람들 말이 많지만 난 신경쓰지 않아. 내 평생신조인 ‘근검절약’이라는 구호를 진심으로 외쳤지. 사치는 죄악이야.”


―결혼은 왜 안 하셨어요?

“양반집 과년한 처녀가 집 뛰쳐나가서 남자들과 어울려 독립운동 하는데 혼사가 들어올 리 없지. 독립운동하면서도 고향에서 흉볼까 싶어 남상절이니, 남미령이니 하는 가명을 썼어. 손목 한번 잡아 보려는 남자들이 왜 없었겠어? 그때마다 ‘이 돼지눈깔 같은 놈아, 냉수 먹고 속차리라’고 호통을 쳤지. 오직 조국 광복이 내 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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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


서울 정동 유관순 기념관 뜰에서 모교 후배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한 남동순 할머니 (2005년)
 뒤편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유관순 열사의 조각상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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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2월부터 한국조폐공사에서는 한국의 위대한 인물 100명을 선정하여 매월 2명의 인물을 발행하고 있는데요, 그 첫번째 달 주인공이 유관순 열사와 광개토 대왕이었습니다. 전면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탑원리 252 에 있는  유관순 열사 추모각에 봉안된 표준 영정(한국화가 석천 윤여환 화백 /2007년 작)을 기초로 제작하였으며, 뒷면은 3.1 정신을 강하게 부각시킨 독립기념관 전시 조각상 3.1 정신상(조각가 박충흠/ 1986년 작) 가운데 메달 제조 특성상 이미지가 부각될 수 있는 부분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표준 영정은 친구인 남동순 여사의 증언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자신이 살아남은 건 관순이가 못다한 일을 하라는 천명이라고 생각하셨던 남동순 할머니는 이제 그 천명을 내려놓고 가실 때가 되신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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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관순 열사의 친구분이 설아 계셨군요..

    2010/04/07 17:45
    • 칼리오페  수정/삭제

      너무 빨리 가버린 친구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사셨을까요. ^^ 친구분이 그동안 살아계셨다는 얘기를 듣고 유관순 열사나 3.1운동이 저와 그리 먼 얘기가 아닌 느낌이 들었습니다.

      2010/04/0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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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기념 메달]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그를 추모하며 (화동양행)

화폐 국내여행/별전 메달 기타 2010/03/29 18:39 Posted by 칼리오페


지난 금요일 안중근 의사의 100주년 추모식이 전국 곳곳에서, 중국 하얼빈과 뤼순에서, 미국 뉴욕 등지에서 열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추앙받기란 힘든 것이 보통 이름을 남긴 사람들의 운명일텐데, 안중근 의사는 이런 운명에서 벗어난 사람인가 봅니다. 그만큼 많은 이에게 귀감인 것이지요. 군인에게는 국가에 대한 헌신을, 천주교 신자에게는 신앙인으로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모습을, 효자인 아들이자 자식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로서의 부성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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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國獻身軍人本分 (나라 위해 몸 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다)


군인 친구들의 미니홈피에 등등에서 볼 수 있는 이 말은  순국 직전에 썼던 유훈이었습니다. 뤼순에서 감옥 근무를 했던 지바는 이 유필을 가보로 간직해 집안에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안중근 의사의 명복을 빌었다고 합니다. 그가 1944년에 죽은 뒤 그의 아내가 남편을 따라 아침저녁으로 추모하다가 후사가 없자 조카 미우라를 양녀로 삼아 그 대를 잇게 했고, 미우라는 이후 유필을 안중근 기념관에 기증했습니다.
사형 집행 전 간수가 마지막 말을 하라고 하자
"우리 대한국이 독립해야 동양평화가 보존될 수 있고, 일본도 위기를 면하게 될 것이다."고 말하며 단순히 식민국가의 독립운동가로서가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사유를 보여준 동양 평화론을 주창했던 그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4분, 밧줄이 드리워져 순국하게 됩니다.



사형수 시신은 당시 법으로 3년 후 소각한다


사형날 안중근 의사는 두 아우인 정근, 공근을 면회하며 마지막 유언을 남김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 : 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냄) 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이 된 의무를 다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어디에 묻혀있는지도 모릅니다. 안 의사의 유해가 밖으로 나갔을 때 그 묘지가 독립운동의 성지로 부각될까 두려워했던 일본은 안 의사의 두 아우의 인도 요구를 묵살하고  뤼순 감옥 공동묘지에 묻습니다. 사형수인 경우엔 유족에게 그 유해를 돌려주는 최소한의 인도주의를 무시한 것입니다. 게다가 감옥 공동묘지에 묻힐 경우 당시 법으로 3년 후에 소각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유해를 모셔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고국으로 반장되지 못한 것은 일본 측의 옹졸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치적인 사유도 있다고 합니다. 광복 된 이후 김구 선생이 평양에서 남북정치지도자 회의를 할 때 북한의 김일성 주석에게 안중근 유해 반장 문제를 공동으로 추진하자고 제의했으나 당시 김주석은 뤼순이 소련점령지라는 이유를 들어 무산시켰습니다.

그동안 각계에서 여러 차례 안 의사의 유해를 모셔오기 위해 유해발굴단을 현지에 보냈으나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2008년 우리 정부의 주선으로 박선주 충북대 박물관장을 단장으로 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단'을 편성하여 두 차례에 걸쳐 현지 발굴 작업을 대대적으로 펼쳤으나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100주년을 맞아 대통령을 비롯하여 각계 인물들이 안 의사 유해를 찾아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합니다. 언제쯤 안 의사의 마지막 부탁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한국조폐공사에서는 2008년 2월부터 한국의 위대한 인물 100인 시리즈 기념메달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기념메달은 42번째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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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중근 의사는 뤼순감옥에서 유묵을 200여점 남겼다고 합니다. 그 중 50여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진은 Ihoon333님의 푸딩 (http://pudding.paran.com/lhoon333 )에서 퍼왔습니다.




 백범이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만들어 놓은 사연이 담긴 지식채널e도 함께 올려둡니다.


지식채널e "네번째 묘"


내가 이토를 죽인이유는 이러하다

한국의 민황후를 시해한죄요

한국황제를 폐위시킨죄요

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요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죄요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죄요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죄요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요

군대를 해산시킨죄요

교육을 방해한죄요

한국인들의 외국유학을 금지시킨 죄요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버린 죄요

한국인이 일본의 보호를 받고자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트린 죄요

현재한국과 일본사이에 경쟁이 쉬지않고

살육이 끊이지않는데 태평무사한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죄요

동양평화를 깨뜨린죄요

일본 천황폐하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죄





사나이 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서 적을 무찌르려 의지를 쌓았더니

이제야 뜻한 대로 좋은 때를 만났구나. 때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때를 만나는가? 북쪽바람 차기도 하나 내 피는 뜨겁구나.

쌓였던 원한을 한번 털어놓으면 어김없이 꼭 도적을 잡으리라.

우리 동포 형제자매들아, 이 공업(功業)을 잊지 말라.

만세, 만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안중근 자서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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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열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잘 읽고 갑니다.

    2010/03/29 21:37
    • 칼리오페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핑구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0/03/30 10:21
  2. 초얼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어서 영원히 사는 것... 안중근 의사께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지만 그를 통해 세세토록 영원히 살게 되셨지요...
    저한테는 목표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와 같이 죽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어쩌면 평생 이루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제가 이 땅에 깊은 뜻을 남기고 죽어서 영원히 살 수만 그리 하고 싶습니다.

    2010/03/29 23:30
    • 칼리오페  수정/삭제

      초얼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랄게요. ^^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0/03/30 10:22
  3. 온리청춘불패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진짜 일본놈 짜증나네여 첨엔 숙제 땜에 봤는데 안중근 의사 빨리 시신 찾아야 할텐데...

    2010/06/3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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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호 화폐는 일본에서 10일만에 만들어져 공수되었다는.. (화동양행)

화폐 국내여행/지폐 2010/03/24 18:27 Posted by 칼리오페


최초의 한국은행권은 요청에서 제조, 운반되기까지 10여일밖에 소요되지 않은, 세계화폐제조 역사상 최단시간이라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화폐제조기술이 뛰어나서였을까요? 5만원권 지폐를 만들 때를 생각해보시면 지폐의 도안 가지고도 네티즌들이 토론에 나설 정도였는데, 그럴리가요. ^^;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고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으로 창립되었습니다. 하지만 13일 만인 6월 25일, 6.25 사변이 일어납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은행은 전시체제로 전환하여 본점을 대전으로 옮겼습니다. 당시에는 일제시대에 중앙은행 역할을 했던 조선은행이 발행한 조선은행권 지폐가 유통되고 있었고요. 전쟁이 나자 전쟁을 치를 자금이 부족해졌지요. 조선은행권으로는 더이상 버틸 수가 없다는 판단이 서자 한국은행은 첫 한국은행권을 발행하게 되었고 그것이 대한민국 제1호 지폐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은행이 발행한 <한국의 화폐> 41쪽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상황이 긴박하여 군당국의 차량지원을 얻어 대부분의 地金銀(純金 1,070kg, 銀 2,513kg)을 진해 해군통제부로 후송하였으나 소산하지 못한 일부 地金銀(純金 260kg, 銀 15,970kg)과 미발행 조선은행권 등은 6월 28일 북한군이 한국은행 본점 건물을 접수할 때 약탈되었다. 북한군은 이때 탈취한 미발행 은행권을 남한 경제를 교란시키는데 사용하였다. 한편, 본점을 대전으로 옮긴 한국은행의 미발행 화폐 보유액은 약 40억원에 불과하였으므로, 전시자금수요 증가에 따른 현금부족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한국은행은 급히 은행권을 새로이 발행하여 이미 발행된 조선은행권과 함께 통용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6월 29일 한국은행이 동경지점을 통해 요청하고 일본 점령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도움으로 일본 대장성인쇄국에서 제조되어 그 해 7월 13일과 7월 14일에 100원권과 함께 총 154억 3천만원이 미 군용기편으로 김해공항에 운반되었습니다. 6.25 동란으로 모든 행정 절차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한국은행법 제26조의 긴급조치권에 의거하여, 한국은행 총재가 7월 20일 발행을 공고하고, 7월 22일에 최초 한국은행권이 대구에서 발행됩니다.


한국은행 1000원 (좌이박) 일본인쇄 (500번 이전)
출처 : 스탬프월드 http://www.stampworld.co.kr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은행 1000원 (좌이박) 한국인쇄 (500번 이후)
출처 : JAUCTION http://www.jauction.co.kr/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은행 100원 (광화문)
출처 : 화중화님 블로그 http://blog.naver.com/hhw0343



상황이 긴박하다 보니 디자인은 "최소한의 미술적 품위"를 유지한다는 개념으로 당시 주일대표부에 걸려 있던 이승만 대통령 초상화를 천원권 디자인의 주 소재로 사용하게 되었고, 백원권 역시 주일대표부에 있던 책 가운데서 골라낸 광화문을 주 소재로 채택하여 평판으로 인쇄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다 <한국은행>을 풀어 쓴 은화가 삽입된 특수용지를 사용해 은행권의 품위와 위조방지에 대처하려고 했고, 조선은행권의 문자표기방식을 따르지 않으려고  <한국은행권>이란 문자를 표면 상단 중앙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표기해 독립국가의 자존을 드러냈습니다. 이때의 문자 표기 방식은 한국은행권의 기본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밤 미국 의회를 통과한 건강보험개혁법안을 두고 우리나라의 의회가 세종시와 4대강 사업을 처리하는 방식과 너무나 다르다는 이야기를 연일 접하고 있습니다. 1년 내내 토론하고, 다수결을 존중하며 반대파도 껴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의회는 여당만의 '끝장 토론'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툭하면 회의장 점거, 장외투쟁을 일삼고 있는 걸 보면... 지금이 전시체제도 아닌데 왜 이래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50년 전 발행된 한국은행권의 뼈아픈 역사가 아직 우리나라의 토론 문화를 바꾸기엔 시간이 더 필요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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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4 18:27 2010/03/2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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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폐에도 이런 아픈 역사가 있었군요,,,ㅜㅜ

    2010/03/24 22:31
    • 칼리오페  수정/삭제

      더 많답니다... 일제시대부터 만주쪽에서 찍어낸 화폐라든가.. 앞으로 글 하나씩 포스팅 할게요~~

      2010/03/25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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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선물로 탁상에 두면 좋을 달력 메달 어떠세요? : 한국조폐공사 호랑이 해 캘린더 메달 2010

화폐 국내여행/별전 메달 기타 2010/02/01 07:28 Posted by 칼리오페
기억에 남는 새해 선물이 있으신가요?

칼리오페가 어릴 적 세뱃돈을 받으면 서울 올라가는 길에 아버지께로 돌아갔던 추억(ㅡㅜ)이 있답니다.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꽤나 짭짤한 수입을 항상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아버지가 큰아버지셔서 명절 때마다 고향의 집안 어르신들 용돈과 사촌동생들 세뱃돈을 위해 꽤 많은 돈을 준비해가셨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갈 땐 텅 빈 지갑을 보여주시면서 무언의 명령(?) (처음에는 돈이 없다고 달라고 하셨던 것도 같습니다만.. ^^;) 을 하셨었지요. 니네들 세뱃돈이 다 아버지가 그만큼 썼기 때문에 받은 것라던가요... ㅎㅎ

그래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설엔 세뱃돈을 아버지께 드리지 않고 제가 유난히 좋아했던 과학잡지를 1년 정기구독했었습니다. 지금도 보물처럼 책장 맨 아래 시렁에 1년치 잡지가 모아져 있지요. 이젠 더 들추어보진 않지만 왠지 모르게 뿌듯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

이번 설이 이제 딱 2주 남았습니다. 다다음주 일요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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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ㄷㄷ 설 연휴가 너무 짧아요. ㅠㅠ by 시로유키님


고향에 내려가실 분들 표는 예매하셨는지요..(칼리오페는 기차표를 예매해놨답니다. ^_^) 올 설 휴가기간이 너무 짧아서 구정이라고 해도 귀경인파가 예년보다 줄어들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새해 선물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예년처럼 돈을 드리는 것보다 한 해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캘린더 메달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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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기운이 느껴지는 데다 희소성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가치있는 보물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1년간 정기구독했던 잡지처럼요. 매번 돈봉투나 상품권, 혹은 과일세트나 먹을 거리를 가져다 드리는 것보다 경인년에 맞춰 수호신처럼 복을 가져다주고 불운에서 지켜주는 백호랑이를 선물해드리는 거.. 센스 백배 아닐까요? ^^& 호랑이 보면 힘이 나잖아요!! 2월의 첫 날,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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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1 07:28 2010/02/01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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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바리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향이 어디신죠..
    저는 제주도에요.
    그치만 설에 가지를 못합니다.
    근무해야 해용..

    메달..캘린더..
    아이디어 좋은데요?ㅋㅋㅋ

    2010/02/03 22:08
    • 칼리오페  수정/삭제

      부모님 고향은 담양이에요.. ^^ 저도 나이 먹고서부터는 잘 가지 않는데요.. 어르신 분들께 좋을 것 같아요. ㅎ

      2010/02/04 15:00
  2.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력 화폐가 있네요,, 신기해라

    2010/02/22 19:15
  3. 프리피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뭐라 멍칭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화동에서는 마이너분야인 버스토큰, 챌린지코인, 파킹토큰, 세차토큰, 푸드토큰, 트레이드토큰 같은 분야를 왜 취급하지 않는건지 궁금합니다.

    돈이 안돼서? ^^

    2010/02/2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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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의 자취를 가장 쉽게 찾는 길 : 만원권 세종대왕

화폐 국내여행/지폐 2010/01/23 18:47 Posted by 칼리오페

“예술이란 늙어 나이를 먹을수록 하늘과 대화를 나누며 어린이 세계로 복귀해야 한다.”

-1991년 제5회 인촌상 수상 소감


마음까지 시리게 할 정도로 추위가 다시 찾아든 오늘,  운보 김기창 화백(1914~2001)이 돌아가신 날이라고 합니다. 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을 한 번 더 보게 되네요. 아실 분은 다 아시겠지만 만원권의 세종대왕은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렸습니다. 79년 6월 발행된 2차 만원권부터 김기창의 세종대왕 영정이 채택되어 도안으로 사용되어 왔고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만원권은 6차 만원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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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감번호 : 한국은행 나 만원권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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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감번호 : 한국은행 바 만원권
(6차)
크기 : 161*76㎜
도안 : 세종대왕 초상, 일월오봉도/혼천의
발행개시 : 2007년 1월 22일
비고 : 홀로그램, 색변환잉크, 요판잠상, 숨은은선, 앞뒤판맞춤, 미세문자,
숨은그림, 돌출은화, 숨은막대, 볼록인쇄, 형광색사 등

몇 년전 운보 김기창의 친일논란으로 만원권에서 세종대왕 영정이 빠져야 한다는 논란이 있었는데요, 이 영정은 1973년 10월 30일부터 국가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번에 광화문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도 이 영정과 닮아있지요. 김기창 화백의 그림을 기준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친일 활동을 한 경력이 남아있는 화백이지만 그의 숨길 수 없는 뛰어난 재능 때문에 일본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이에 대한 논란에선 비켜서서 글을 내리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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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영정
비단에 채색
153X211㎝
1973년 작
영릉 세종전 봉안


‘장애를 딛고 선 천재화가’라는 책도 있는데, 그는 일곱 살 때 장티푸스를 앓는 바람에 귀머거리로 평생을 살게 됩니다. 일제 시절 중학을 나와 교사를 할 정도로 식견이 높았던 어머니는 아들의 그림 그리는 재능을 일찍 알아채고 당시 어진화가였던 이당 김은호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여보내게 되지요. 김은호 화백은 운보의 첫 인상을 “상서로운 길조인 봉황새 한 마리가 성큼성큼 걸어들어오는 듯 하였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는 1937년 <고담>이라는 작품으로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특선을 받고, 1940년에는 선전 추천 작가가 됩니다. 이때는 이미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두 동생과 할머니를 부양하는 가장이었습니다. 선전에서 특선으로 당선 되었을 때 신문에서는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24세 소년 가장이 가난과 신체적 장애를 이기고 얻어낸 의지와 예술 투혼의 승리”라며 격찬했지요.

이곳에 운보 김기창의 수상기록을 적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림 몇 점 올릴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강호한일(江湖閑日)
비단에 수묵채색
120X64㎝
1985년 작
조희명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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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먹은 새
두방에 채색
39X32㎝
1968년 작
운향미술관 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청[精聽]
비단에 채색
130X193㎝
1934년 제13회 선전 입선작
개인소장(일본)

개인적으로 김기창의 정청 그림을 보다보면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마음 한 구석이 아련해지곤 합니다. 김기창이 21살 되던 해인 1934년 제1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작품인데요, 이 그림의 모델은 운보의 막내동생으로 현재 북한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기옥과 운보의 첫사랑 여인인 이소제입니다. ^^  이소제는 운보의 모친이 세상을 떠난 후 조모와 함께 살 때 말이 통하지 않는 운보의 손발이 되어 주었던 기생이었다고 하죠. 이 작품 외에 여러 작품의 모델이 되어 주었는데 스무살이 채 못되어 폐결핵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ㅠ 이소제가 세상을 떠난 후에 선전에 입상을 해서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세상에 남게 될 줄 몰랐겠죠..



“..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침묵의 세계 속에 오래 갇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이렇게 그림에 몰두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나의 예술에 남다른 점이 느껴지는 것도 나의 오랜 침묵 때문에 생겨난 것일 겁니다. 나는 내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고 해서 우울해 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지금 저녁 하늘에 파란 색 노을색 섞여 있습니다. 맑은 하늘 해질무렵의 오묘한 하늘색깔은 언제봐도 예뻐요. 추워도 좌절하지 말고, 기운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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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3 18:47 2010/01/23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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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폐는 지문이 뭍으면 값어치가 덜어진다고 하던데 맞나요

    2010/02/22 19:11
    • 칼리오페  수정/삭제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만.. 지폐의 경우는 등급이 잘 하락하지는 않습니다..

      동전은 지문이 닿으면 변색,산화되기 때문에 지문이 절대로 묻으면 안 되지요. 대신 지폐에서 '완전미사용' 대접을 받을 수는 없겠지요. ^^

      이런 것들과 관련된 포스트를 올려야 하는데요. 잘 올려야 할 것 같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핑구님의 질문을 받았네요.. ㅠㅠ;; 핑계는 올림픽시즌이다보니.. 올림픽에 정신 팔려서.. 암튼 질문 감사합니다~ ^^

      2010/02/2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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